[칼럼] 한국 공교육을 왜곡시킨 주범은 누구일까?

학교, 학부모, 학원, 교육평가원, 수능출제위원이 공범
킬러문항을 출제해야 사교육시장 활성화 될 수 있어

  • Editor. 김재봉 선임기자
  • 입력 2023.06.19 21:02
  • 수정 2023.06.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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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 김재봉 선임기자
더뉴스 김재봉 선임기자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학교 수업만 열심히 하면 대학을 입학할 수 있도록 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이란 것도 원래 취지는 ‘대학교에서 수업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평가’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육평가원과 수능출제위원들이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핑계로 일명 킬러문항을 무분별하게 출제하기 시작했다.

킬러문항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했고, 결국 학생들은 학원과 고액과외 등 각종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게 됐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사교육비란 올무에 갇혀버렸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입시지원으로 노후자금을 여유롭게 모을 수 없었다. 가계지출의 큰 비중을 학원비와 고액과외비가 차지했다. 유명 일타강사들은 100억 넘는 연봉을 받는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큰 학원들은 1년 매출이 조 단위를 넘긴다고 한다.

다음은 대학입시 관련해서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자들이 내놓은 발언들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15일 오후 2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브리핑)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더 보충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막기 어렵다.” (15일 저녁 6시, 대통령실 윤 대통령 발언 추가 공개)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 (16일 아침 8시13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서면브리핑)

한국 공교육의 정상화는 사실 대부분 알면서 외면한 문제다. 이 문제를 윤석열 대통령이 겁도 없이(?) 들고나온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 이 말은 지극히 옳은 말이다. 다만, 올해 수능을 불과 4개월 남겨놓은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큰 아젠다만 던져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된 것이다.

한국 공교육의 문제점들은 많은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첫째. 토요 격주 휴무, 토요 전면 휴무가 이미 오래전에 시행됐지만,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는 학부모 눈치 본다고 교과별 수업일수를 축소하지 못했다. 대신에 5교시는 6교시로, 6교시는 7교시로, 그리고 7교시는 8교시로 늘어났고, 일주일에 한 번만 있던 7교시는 일주일에 두 번 있게 됐다. 그래도 모자라는 수업일수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2학기가 종료되는 겨울방학이 다가오면, 교과별 진도는 모두 종료됐지만, 학교는 출석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학생들은 “배울 것도 없고, 학교에 가면 엎드려 자거나 책 읽거나 영화 보여주는데, 왜 학교를 계속 나가야 하는가?”라고 불만을 이야기한다.

둘째. 교과서는 끊임없이 개정됐지만, 개정된 교과서에 충실하게 지도할 교사는 충분하지 않다. 일례로 한국의 영어교육은 6차과정 개정판 이후부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정도면 영어로 말하고, 영어를 잘 듣고, 영어로 작문하고, 영어로 토론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6차과정 개정 이후 학교에서는 오랜 시간 옛날 학력고사 시절과 동일하게 본문 독해와 문법에 초점을 맞춰 가르치고 시험문제를 냈다. 교과서에 분명히 실려 있는 작문, 대화, 토론, 팀워크 등은 건너뛰고 진도를 나갔다.

지금도 고등학교 영어는 수능영어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을 벗어나면 전혀 쓸모없는 영어교육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이나 영국 대학생도 도대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모르는 수준의 문제를 내면서 세계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수능출제위원들의 문맥이 통하지 않는 킬러문제 출제 덕택이다.

셋째. 전국의 고등학교는 교육부 인가 초거대 입시학원이다. 정부는 수능에 초점을 맞추며 모든 학생이 입시지옥에 빠지도록 EBS수능특강을 추가했다. 고등학교 수업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필요한 취급을 받는 예체능 수업일수가 줄어들고(예체능 수업이 있어도 자습시간으로 돌리면서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주요과목으로 변경), 다음으로는 수능에서 선택받지 못 한 과목들이 줄어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급받은 교과서는 찬밥이었다. 신학기를 시작하면서 모든 학생이 교과서를 받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EBS수능특강이나 다른 사설 교재들을 활용해 수능풀이에 초점을 맞춘 수업이 진행된다. 자칭 유명 고등학교들은 1학년 때부터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EBS수능특강, 각종 출판사들의 수능풀이, 모의고사풀이, 수능기출문제 풀이 등 모든 교재가 수능풀이에 맞춰진다.

한국 공교육의 왜곡현상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오늘도 한 유명한 입시학원의 관계자는 방송에 출연해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측정하기 위해 킬러문항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킬러문항이 왜 필요할까?

수능에 킬러문항이 출제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학원을 다닐 필요성을 느낄까? 학교에서 배운 내용대로 수능문제가 출제된다면, 학원을 다니고, 1:1 족집게 강의를 듣고, 고액과외를 할 필요성을 느낄까? 연봉이 100억이 된다는 일타강사가 한국사회에 필요할까? 1조, 2조 매출을 올린다는 학원이 한국사회에 필요할까? 모두 킬러문항이란 위기감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유명학원을 다니지 않고, 족집게 1:1 강의를 듣지 않고, 고액과외를 듣지 않으면, 수능출제위원들이 자랑스럽게 출제하는 킬러문항을 풀지 못한다는 위기감이다.

국어문제(언어영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학 문제와 물리 문제가 출제됐고, 영어문제(외국어영역)에도 동양철학부터 시작해 경제학 문제, 과학실험 문제 등이 출제되어 영어지문을 독해해놓고 정작 문제는 풀지 못하는 웃기지만 슬픈 현상(웃픈)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입시정책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생 모두가 대학에 진학해야만 하는 사회는 아니다. 한국은 35%대의 대학진학율에서 80%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사회로 탈바꿈했다. 학력인플레가 발생했다. 이러한 학력인플레는 민주당정권에서 본격화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85% 이상이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85%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에 일단 입학하고 4년의 시간을 채우면 대부분 대학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특별히 공부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지만, 설령 과락하는 과목이 몇 개 발생해도 어떻게든 모두 4년제 대학 졸업장이나 2년제 대학졸업장을 모두 손에 거머쥐었다. 중간에 자신이 학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85%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으면, 대학 4년 동안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이 어렵게 해야 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졸업기준을 강화하지 않았다. 수업 이수 기준도 강화하지 않았다. 일명 학점을 짜개주는 교수 강의에는 학생들이 몰리지 않아 폐강됐고, 졸업 기준이 까다롭다고 대학이 소문나면 학생들이 피하는 현상이 발생할까 봐 대학은 입학만 하면 특별한 일 없이 졸업은 자동으로 됐다. 학생들을 학문을 탐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학생 1명에게서 거둬들일 수 있는 수입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부에서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졸업생 중 취업을 얼마나 시켰는가?’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학부모-교육부’의 끈끈한 관계에 ‘학원과 대기업의 취직난’이 양념으로 버무려진 한국 공교육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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