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 우리들의 자화상’ 2

제2부 철학적 대화 -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시대에 우리는 또 한 명의 김대중이 될 수 있었을까?

  • Editor. 김재봉 선임기자
  • 입력 2022.09.19 16:50
  • 수정 2022.09.1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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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하기 하루전인 5월 17일 늦은 밤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을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 대공수사국 303호 조사실로 잡아갔다.

동생 김대현, 장남 김홍일,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비서와 경호원들도 불법으로 강제 연행됐다.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김대중은 같이 잡혀온 사람들이 고문으로 내지르는 비명을 들어야 했다. 이때를 김대중“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수모와 고통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 시절 근전(槿田) 김재봉(金在鳳)은 신문기자였으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를 지냈고, “조선독립을 목표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라는 말을 남겼지만, 광복 1년을 남기고 1944년 생을 마감했다.

경북 안동 김재봉 생가에 세워진 큰 비석에는 “조선독립을 목표하고”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정권에서, 그리고 경북 안동이라는 지역적 특색에 차마 뒤에 이어지는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는 글은 옮기지 못했다.

이 말은 하는 이유는 타인이 아닌, 가까운 종친의 일원인 ‘근전 김재봉’이 했던 일을 “나는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신군부 체제에서 김대중이 했던 그 일을 “우리는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자는 것이다.

근전(槿田) 김재봉(金在鳳)은 원래 "조선독립을 목표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고 말했다.
근전(槿田) 김재봉(金在鳳)은 원래 "조선독립을 목표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고 말했다.

논형에서 출판한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 우리들의 자화상’ 2부는 ‘철학적 대화 -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란 주제인데, 첫 장을 여는 제목은 ‘인간, 사회, 역사’란 주제로 시작한다.

이 책은 박정희의 성격을 그대로 읽히도록 하고, 김대중의 성격을 그대로 읽히도록 한다.

박정희는 “나는 항상 인간혁명과 정신개조를 강조해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5.16 이전에 터키의 케말 파샤, 이집트의 낫세르 등 주요 혁명 사례들을 공부했다고 밝혔다. 박정희는 인간이 변화되고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혁명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박정희는 5.16후 ‘국가재건 국민운동’에 대해 “이 국민운동은 5.16혁명의 이념을 국민혁명으로 결실시키는 동시에 인간개조와 국민정신 진작을 하기 위한 순수한 기관 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목적을 위해 인간은 개조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이 목표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정신을 하나로 집중할 수 있다는 정치철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중은 “일사불란한 사회가 역사발전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박정희의 인간에 관한 생각과 국민정신에 대해 반대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김대중은 역사발전에서 과정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하나의 목적을 정해놓고 단기간에 압축성장하는 것은 그 빛 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고 경고하면서 박정희의 역사발전 사고를 경계한다. 결국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김대중은 우리 역사 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며, 민중이 역사의 발자취에서 남긴 것은 고난과 한이라고 역설한다. 그 속에서 밟히는 잡초처럼 민중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대중이 말했던 우리민족의 정체성 중 하나인 ‘한(恨)’이 과연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정체성으로 온전한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민이 필요하다.

류상영 교수의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표지, 논형 出
류상영 교수의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표지, 논형 出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 우리들의 자화상’의 작가 류상영 교수는 박정희, 김대중 모두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역사를 만들어 간 것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함과 동시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는 계속 이 둘의 같은 시대상 안에서 다른 관점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특히 아리랑과 처용가에서 박정희는 그의 극단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리랑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처용이 자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춤을 출 수 있느냐, 권총으로 쏘아 버리든지 몽둥이나 죽도로 패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냐고 박정희 특유의 방법론을 꺼낸다.

“권총보다 용서가 더 강할 수 있다” 김대중의 답변이다.

김대중은 우리 민족의 한과 용서가 합쳐지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도 더 발전할 수 있고, 한국 정치의 원한과 정치보복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예로 김대중은 5.18광주의 한을 민주회복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만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60~70년대(79년 10월 26일까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론’과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으로 비교된다. 다만, 현실에서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은 이 기간에 실현될 수 없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으로 대표되는 국가주도 경제개발을 추진했다. 이 기간에 전세계에서도 고유명사로 등록된 한국의 ‘재벌’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재벌의 한국경제 지배력은 더욱더 가중됐다. 한국경제의 고속성장으로 가난, 배고픔 등에서 벗어났지만, 한편 1997년 IMF사태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공산주의만 반대한다면 아시아에서는 독재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강력한 정부의 주도 아래 경제개발을 리드해야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민간주도로 해서는 백년하청이다” 대구사범 동기생 황용주의 이 말은 박정희가 하고 싶은 말로 들린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경제이론은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팽팽한 평행선을 달린다.

주체사상(主體思想)과 필터(여과지, 한국화-韓國化), 그리고 박정희의 ‘우리식 민주주의’,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로동당의 공식 이념이다. 김일성주의(金日成主義)라고도 하며, 엄밀히 따지면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론·방법의 전일적 체계”를 뜻해 주체사상보다 상위의 개념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체사상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의 회의에서 처음 주창되었고 김일성이 1930년 지린성 창춘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연설문에서 주체적 입장이 천명되었다고 보며, 실제로 주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 12월 28일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가 발표된 다음부터이다.-위키백과 참조-

박정희의 민주주의 관념은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 탄생과 흡사하다고 해야할까?

박정희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한국에 맞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외국에서 들어온 주의, 사상, 정치제도를 우리의 체질과 체격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식 민주주의, 즉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화는 다른 말로 토착화다. 박정희의 말대로 ‘주의, 사상, 정체제도’의 한국화는 분명 필요한 요소가 맞다.

“민주주의에는 런던의 민주주의도 있고, 파리의, 워싱턴의 민주주의도 있다. 물론 한국식 민주주의도 있고, 인도식 민주주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이는 이상 주권자인 국민에게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비판하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결정하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점,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 김대중 민주주의 1974년 1월 3일 일기-

매카시즘과 박정희 – 지역감정과 색깔논쟁은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병폐임과 동시에 한국사회의 건강을 가로막는 요소다. 매카시즘(McCarthyism)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을 말한다.

박정희는 1963년 윤보선과 맞붙은 대선에서 야당이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 여순사건과 관련한 숙군작업에 연루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념공세를 했다고 주장하며, 1963년 10월 5일 동아일보 1면에 실은 반매카시즘 광고는 박정희와 공화당의 의지였다고 항변한다.

이에 김대중은 색깔논쟁을 끌고 온 윤보선에 대해 인정하면서 색깔논쟁을 대선에 끌고 온 것은 윤보선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말한다. 또한 박정희의 사회주의 경력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해방 전후 한국사의 질곡의 한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직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 전두환은 김대중을 끊임없이 색깔논쟁을 통해 ‘빨갱이’로 몰았다.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를 거친 대한민국,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박정희와 김대중이 바라보는 일본에 대한 시각은 다르다. 더욱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르다. 누구보다 더욱더 친미주의처럼 보였던 박정희는 끊임없이 미국과 갈등구조에 놓여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박정희와 미국은 다양한 갈등구조에 놓여 있었다.

‘민족과 민족주의’에서도 박정희와 김대중의 관점은 다르다. 박정희가 민족을 개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김대중은 민족이 어느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으로 개조되거나 재창조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향한 대외적인 반작용으로도 나타나지만, 가장 극적인 민족과 민족주의 분출은 분단된 남북한과 연결된다.

한반도, 김대중의 ‘국가연합, 연방, 통일국가’ 3단계 통일론, 그리고 남북의 다시 하나 됨을 위한 햇볕정책, 이러한 노력을 퇴색시킨 대북송금 특검은 국무위원 중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반대했음에도 문재인 민정수석과 참모진들의 찬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을 추진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차례]

프롤로그 1 우리들의 자화상,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프롤로그 2 이 책의 독자를 위해

제1부_ 인간적 대화: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과 어머니/ 민족적 비애/ 가난/ 둘이 만났던 순간들/ 기뻤던 순간들/ 슬펐던 순간들/ 눈물/ 정치와 권력/ 생과 사, 그리고 유언/ 성찰과 이해, 그리고 상생

제2부_ 철학적 대화: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 사회, 역사/ 경제성장/ 민주주의/ 지역감정과 색깔 논쟁/ 외교전략: 미국과 일본/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분단과 통일

제3부_ 역사적 대화: 박정희와 김대중이 얽혀 살아온 역사 현장들

한국전쟁/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4·19/ 5·16/ 한일회담/ 월남파병/ 경부고속도로/ 삼선개헌/ 1971년 대선/ 전태일/ 새마을운동/ 7·4 남북공동성명/ 유신과 중화학공업화/ 김대중 납치사건/ 10·26

에필로그 1 청년과의 대화: 박정희와 김대중이 말하는 청년

에필로그 2 박정희와 김대중의 연보

참고문헌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작가 류상영 교수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작가 류상영 교수

[작가 류상영 소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9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한국과 동아시아 정치경제와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학부에서부터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적 사실과 정치경제적 이론을 접목하는 것을 연구의 본령으로 여겨 왔다. 포항제철 성공 요인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박태준 회장과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박정희 시대에 관한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관장으로서 전시실을 개관하고 사료를 발굴 보존하는 데 힘썼고, 이를 기초로 『김대중 연보 1924-2009』, 『김대중 저작목록집』, 『김대중전집 I』 등을 대표 집필하고 출간하였다. 아울러 40여 회에 걸친 인터뷰를 진행하여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였고 김대중에 관한 다수의 연구 결과를 출간하였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고, 이후 일본의 게이오대학과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UBC) 그리고 토론토대학(UofT)에서 방문 교수를 지낸 바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에 관한 그의 대표적인 연구로는,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전략 선택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한국정치학회보, 1996); “한국의 경제발전 궤적과 박정희모델”(선인, 2006); The Park Chung Hee Era(Harvard University Press, 2011, 공저); “1962년 박정희의 통화개혁과 한국의 민족주의”(현대정치연구, 2020); “Chaebol”(Oxford University Press, 2022); 『김대중과 한일관계』(연세대 출판문화원, 2012, 국·일문, 공저); 『김대중과 대중경제론』(연세대 출판문화원, 2013, 국·영문, 공저); 『김대중과 한국야당사』(연세대 출판문화원, 2013, 국·영문, 공저); “日韓關係50年: 金大中外交を再考する”(立敎大學, 2015); The Spirit of Korean Development(Yonsei University Press, 2015); “한국 민족주의의 두 가지 길: 박정희와 김대중의 연설문 텍스트 마이닝”(현대정치연구, 2021,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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