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리포트] 누가 어떻게 몰락하는 소니를 재생시켰나 - ‘소니 턴어라운드’

  • Editor. 오태규 작가
  • 입력 2022.09.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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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오태규 작가] 한국 사람 중에서 일본의 대표 기업 '소니(sony)'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소니 하면, 나이가 좀 든 사람은 음향기기 '워크맨'이나 명품 브라운관 TV '트리니트론' 을, 젊은 사람들은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 관해 좀 더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니 창업주의 한 사람인 모리타 아키오가 도쿄도지사를 지낸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낼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소니의 시절(1980년대 말)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오태규 작가,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전 오사카 총영사
오태규 작가,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전 오사카 총영사

지금은 삼성에 뒤지는 회사가 됐지만, 한국의 세대를 "일본을 경외하던 '소니 세대'와 일본에 당당한 '김연아 세대'"(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의 표현)로 나눌 만큼 소니는 중년 이상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상징이었다. 내가 특파원 시절(2001~2004)에 일본삼성의 사장이었던 정준명 씨로부터 소니가 한창 잘 나가던 때는 삼성의 고위급 임원이 소니 본사를 찾아가면 복도에서 몇 시간이고 대기해야 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급성장하자 삼성의 임원이 소니를 방문한다고 하면 해외로 출장갔던 상대방이 급히 귀국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정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삼성의 부상과 소니의 몰락을 생생하게 느낀 바 있다.​

흔히 소니의 몰락은 엘시디(LCD), 피디피(PDP) 등 평판 디스플레이 TV의 유행을 무시한 채 기술력만 믿고 브라운관 TV를 고집한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주력 사업인 전자보다 영화, 게임기 등 방계 사업에 치중하면서 몰락이 더욱 가속화했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나는 그쪽 분야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왜 기세등등했던 소니가 왜 삼성에도 한 참 뒤지는 수준으로 뒤쳐지게 됐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여러 지표를 통해 소니가 전성기보다 쇠락한 것은 사실이고, 최근에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소니 턴어라운드>(알키, 히라이 가즈오 지음, 박상준 옮김, 2022년 6월)는 몰락하던 소니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의 이야기다. 소니 사장을 지낸 지은이 히라이 가즈오가 바로 당사자다. 나는 이 책을 역자인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로부터 받았다. 박 교수는 지금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는데, 같은 객원연구원인 나에게도 책을 보내 주었다.​

이 책은 기업의 이야기라기보다 사람의 이야기, 지도력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경영인뿐 아니라 정치인을 비롯한 각계의 지도자들이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경제 쪽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업의 이익이고, 정치 쪽 지도자의 가장 큰 기준은 공공성이라는 점에서 경제 쪽 지도자의 덕목을 그대로 정치 쪽에 대입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부분만 잘 가린다면 좋은 정치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히라이 가즈오는 일단 전자기업을 중심으로 커온 소니에서 주류 출신이 아니다. 방계라고 할 수 있는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출신이다. 또 아버지의 일로 어릴 때부터 미국과 일본, 캐나다를 오가면서 유년 및 청소년 시절을 지냈다. 이른바 이방인의 삶을 살아온 비주류다. 그런데 결국은 소니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이런 비주류, 이방인적인 면이 득이 되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삶을 통해 자연히 이견을 듣는 자세,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웠다는 것이다. 주류는 강한 것 같지만 그들만의 집단사고에 갇혀 소수의견과 이견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위기 국면에서는 이제까지와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히라이의 존재는 소니에게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소니 재생에서 가장 전면에 내세운 말은 '간도(감동의 일본어 발음)'다. 그는 소니의 창업 때 사명인 '도쿄통신공업'의 설립 취지서의 첫 번째 항목에 있는 "성실한 기술자의 기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는 자유·활달하고 유쾌한 이상 공장의 건설"이란 말에서, 소니의 지향점으로 감동을 발견했다. ​

그리고 감동을 주기 위한 행동, 사원들의 열정의 마그마를 끌어내는 작업에 나선다. 그는 이를 위해 어려운 일일수록 사장이 직접 나서고, 직위를 내세우지 않고 실력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주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솔선수범했다. 예를 들어 사원을 해고할 때는 인사부에 맡기지 않고 직접 당사자를 만나 자신이 설명했다. 그는 "어려운 판단이 될수록, 특히 마음 아픈 판단이라면 그것만큼은, 경영자가 스스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장면에서 도망간다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자신의 원칙을 밝혔다.​

2012년부터 18년까지 6년 동안 국내외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원들과 70회 이상의 타운홀 미팅을 했다. 그것도 형식적인 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그는 미팅 때마다 "여러분, 단 하나 지켜줬으면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건 이 세션에는 규칙이 없다는 겁니다. 즉, 무슨 말을 해도 좋다는 겁니다"는 말을 하며 사원들의 자연스러운 의견을 이끌어냈다. ​

이 밖에 그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을 내 나름대로 열쇳말로 정리해보면, 'IQ(지능지수)가 아니라 EQ(마음의 지능지수)', '양보다 질', '나는 아는 게 없다',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지는 것이 리더의 역할', '현장감이 위기감을 낳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매출보다 ROE(자기자본 이익률)', '연구개발비만큼은 일정 수준을 유지' 등을 들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적용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다른 기업인으로부터 배우는 자세도 본받을 만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부터는 "빈사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가 리더십을 갖고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다시 빛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에게서는 그가 '모리조'라는 이름으로 직접 카레이서로 참가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원과 일체감을 이루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가 2012년 4월 소니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소니는 4년 연속 적자에 소니의 간판인 TV는 8년 연속 적자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퇴임 때인 2018년에는 사상 최대인 매출 8조 5440억엔에 당기 순이익 4908억엔을 올렸다.

실적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최고를 찍은 시점에서 그것도 58살이라는 창창한 나이에 스스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이다. '잘 나갈 때 물러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물러남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그는 퇴직 후 아동 빈곤과 교육 격차 해소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삼성이 소니를 눌렀다는 것에만 자만하지 말고, 이런 기업인이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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