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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박용규의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기사승인 2021.02.17  1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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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의 동학농민혁명 재조명
독립운동에도 양반만 우대하나, 농민의 항일독립운동은?
친일파 이병도와 신석호가 규정한 내규에 묶여 있는 국가보훈처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2차 동학농민혁명 후 체포된 전봉준은 1895년 1월 9일 나주 초토영에서 일본인 미나미 고시로에게 취조를 받는다.

미나미 : 너희들이 거병한 대목적을 숨기지 말고 말해보라.

전봉준 : 7월 일본군이 경성에 들어가 왕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동지를 모아서 이를 쳐서 없애려고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이후 전봉준은 미나미 고시로 소좌의 서울압송 명령에 의해 1895년 1월 30일 나주를 출발해 2월 18일 서울로 압송됐다.

일본 공사관까지 들것에 실려온 전봉준은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의 “어찌해서 이 폭거를 일으켰는가?”란 질문에 “작년 6월(음력) 일본병이 경성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함께 물리치려고 마침내 의병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우리 동학당의군, 그 무리들은 훈련이 없고 무기는 완구적인 것이다. 사람, 무기 모두 정예한 일본병에 비길 수 있다고 본디 믿지 않았던바, 그렇지만 임금이 굴욕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 죽음을 당하고서 끝낼 결심을 가지고 일어섰다.”라고 답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의 신간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도서출판 '인간과자연사' 표지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이 3.1절 102주년을 앞두고 한국사회가 유독 농민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고, 보훈처가 양반출신들은 대부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지만 농민출신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출판사 ‘인간과자연사’에서 출판한 박용규 연구위원의 책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에서는 1차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에 저항하는 투쟁이었지만, 2차 동학농민운동은 그 목적이 분명하게 항일독립운동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전봉준이 체포되어 나주 초토영에서 미나미 고시로와 나눈 취조에서도 나타나고,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 공사관에서 이노우에 카오루 공사와 나눈 취조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전봉준을 사형에 처한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재판소 판결문을 보면 더욱더 분명하다.

“피고(전봉준)는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탄(倂呑)하고자 하는 뜻 인줄 알고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 일본 거류민을 국외로 몰아낼 마음으로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여 전주 근처 삼례역이 토지가 넓고 전라도 요충지여서 1894년 9월경에 태인을 출발하여 원평을 지나 삼례역에 이르러 그곳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대도소(大都所)를 삼고,..(중략) 같은 해 10월 26일쯤 충청도 공주에 다다렀더니, 일본군이 먼저 공주성을 웅거하여 있기에 전후 2차례 접전하여 보았건마는 두 번 다 크게 패하였는지라.(이하 생략)”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

민족문제연구소 박용규 연구위원은 “아직도 대한민국은 양반의 나라인가?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은 차별 받고 있다”면서 1894년 8월 발생한 갑오의병, 1895년 을미의병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2천여 명에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했지만, 갑오의병과 을미의병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들에게는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누락시키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용규 연구위원은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 책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다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 사살, 작두형, 화형을 당해 서거한 순국자 111명과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일본군에 체포되어 총살 당한 순국자 6명,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순국자 2명 등 총 119명의 명단을 뽑아 정리했다.

지난 2020년 3월 18일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병환 중에 “동학농민혁명 현재와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정기학술대회 자료집)란 논문을 썼다. 논문에서 이이화 선생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재의 정권에서도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들이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있기를 촉구했다.

또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대상요건에 따르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1895년)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분”으로,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실이 있는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규정에 따라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모든 순국선열은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 2019년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한지 125년만에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지정해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저자 박용규 연구위원은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운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과 국가보훈처 심사위원들의 “동학농민운동은 그 동기가 반봉건 성격이 크다. 2차 봉기도 1차 봉기의 연속선에 일어났다. 동학농민운동을 민족운동으로는 보나 적극적 독립운동으로 보지 않는다. 국권회복을 위한 적극적 독립운동이 아니다. 항일이라고 해서 다 포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에 대해 “2020년부터 새로 사용하는 고등학교 8종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통해 반박이 가능하다. 8종 교과서 전부가 2차 동학농민운동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재봉기를 했다’라고 기술했음”을 강조했다.

한편, 박용규 연구위원은 독립유공 서훈 내규를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서훈 내규에 1962년 이병도와 신석호(두 명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에서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고 한것에 근거해 심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즉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가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려면 국가보훈처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병도와 신석호가 규정한 내규를 고쳐야 한다. 국가보훈처 먼저 친일청산을 해야한다. 이병도와 신석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일파 이병도와 신석호가 만든 내규에 충실하다는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이전에 발생한 갑오의병(1894년)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들어가 있다.

김재봉 선임기자 kimjaibong@gmail.com

<저작권자 © THE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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